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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노트

[동해게하] 묵호로 혼자 여행을 간다면 '103 LAB'


어쩌다 묵호 '103LAB'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차였습니다. 날씨도 덥고 나가기도 귀찮아서 딱히 계획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려 했어요. 수요일은 그저 그렇게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하루를 보내고 목요일 10시쯤 느즈막이 일어났는데, 휴가를 계속 이렇게 보내기가 뭔가 조금 아쉬운 겁니다. '귀찮지만 이 마음 조금 참고 한 발자국만 나가면 또 다른 세상일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죠. 직장 동료 본가가 동해인데 '동해 좋으니 놀러가라, 맛집도 많다.'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동해를 가자.' 그 생각으로 바로 기차표를 찾아봤습니다.

비성수기에 평일인터라 기차표는 널널했습니다. 기차 자리가 아주 많다는 것은 확인하고 우선 잘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동해 게스트하우스'라고 검색을 해봤는데 캡슐형인 곳이 나오더라고요. 우선 제가 그런 곳을 가보지 않아서 신기하고 궁금했습니다. 언덕에 있다고는 하는데 후기도 읽어보니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무작정 '새로운 거, 새로운 곳!' 하며 예약을 했습니다. 

원래 생각한 기차 목적지는 동해역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가 묵호역 주변에 있어서 묵호로 가는 기차를 끊게 되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로 인해서 여행 목적지를 정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묵호라는 곳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동해시 안에 있는 동이더라고요. 주변에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 묵호 등대, 망상 해변 등 볼 거리도 많아서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2시 1분 KTX를 타고 강릉에 가서 - 무궁화호로 갈아탄 뒤 - 묵호역으로 가려 했으나 (3시간 정도 소요) 사정이 생겨 2시 1분기차를 놓치게 되었어요. 이후 시간을 알아보니 2시 30분 묵호로 가는 무궁화호가 있어서 부랴부랴 기차를 타면서 어플로 예매를 하고, 환승없이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달려갔습니다.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어요. 

묵호역에서 내려서 게스트하우스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였습니다. 분무기 물뿌리듯 비가 오는데 택시를 타기에는 아깝고 동네 구경도 할 겸 그냥 맞으며 걸었습니다. 묵호항을 지나 쭉쭉 걸어가다보면 논골담길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언덕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후기를 볼 때에도 높은 언덕에 있어서 걸어가기에는 조금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평지가 아닌 마을 윗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라니, 어떤 곳일까 궁금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방향을 안내해주는 지표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가끔 갈림길이 나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요. 밤이 아니었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가로등이 있긴 하지만 고르지 않은 경사로 길을 올라가기에는 저녁시간은 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왠지 저 곳 인 것 같았습니다. 103이라고 적혀있는 빨간 간판이 보였어요. 제가 밝기를 낮춰서 찍느라 사진이 더 어둡게 나오긴 했지만 정말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찾아왔으니 안도하고, 이곳이 게스트하우스가 맞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너무 카페 분위기의 공간이었어요. 도어락으로 문은 잠겨 있고 안에는 아무도 있지 않아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거니 그곳이 게스트하우스가 맞다. 카페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비밀번호를 알려주셔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오늘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언니가 뒤늦게 합류해서 이 날 하루는 둘만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내부를 보니 정말 카페와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커피 머신에 오븐 등의 머신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메뉴판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음료들을 3-4천원의 가격에 팔고 있었어요. 아침에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6시까지는 카페로 운영하고 그 이후 시간대에는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 카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곳에서 자신이 사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요. 저는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온 거라 나중에 이곳에서 언니가 사온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도 나왔는데, 어찌나 분위기가 좋던지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고 전자레인지도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무젓가락, 종이컵이 놓여 있었어요.  손님 또는 투숙객이 볼 수 있도록 몇 가지의 책도 꽂혀있었어요. 아, 그리고 소리에 예민해서 잠을 잘 못자는 투숙객을 위한 귀마개(주황색 스펀지) 도 준비되어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물건들에서 이곳에 왔다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어요. 

공간이 너무 예뻐서 자꾸 사진을 찍게 되더라고요. 한 쪽 구석에 기타가 놓여 있는데, 저 기타는 자유롭게 쳐도 된다고 안내문에 써있었습니다. 노래를 불러도 된다면서요. 안내문에는 전자 피아노도 함께 써있었는데, 그건 치우셨는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기도하고 기타를 조금 배웠는지라 나중에 씻고 나와서 기타를 쳐보았지요. 

카페 공간을 구경하고 방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들어가면 미니 냉장고가 하나 있는데, 음식을 자유롭게 넣어서 보관할 수 있었어요. 

방으로 들어가는 길 벽쪽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서 잘 쉬다 감을 손글씨로 남긴 흔적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몇 개 읽어보았는데, '주변에서 꼭 가보라고 추천해서 왔다.', '관광지 보다는 게스트하우스 때문에 이곳에 왔다.', '사장님 부부가 너무 좋으시다.' 등의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여자 방과 남자 방으로 나뉘어져있어요. 여자 방으로 들어가면 2인실 방이 안에 따로 있고, 그 밖에는 6명이서 잘 수 있는 캡슐형 침대와 화장실, 파우더룸이 있는 곳이 있었어요. 

쭉 직진하면 화장실, 화장실과 캡슐 침대 사이에 있는 공간에 파우더룸이 있습니다. 

캡슐형 침대는 원목으로 이렇게 되어있어요. 아래 3칸, 위에 3칸으로 되어있고, 각각의 공간마다 블라인드가 설치되어있어서 블라인드를 내리면 개인적인 공간이 완성 되었답니다. 

안쪽에는 약간 노란빛의 전등과 콘센트가 마련되어있어요. 

사실 오기 전에는 좁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는데, 안에 들어가보니 무척 넓어서 안심했습니다. 작은 방안에 있는 것 처럼 아늑하기도 했고, 함께 묵는 다른 사람들을 덜 신경쓰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았습니다. 

이곳이 안쪽에 있는 파우더룸이에요. 엄청 큰 전신 거울이 있고, 앉아서 화장을 할 수 있는 곳도 잘 되어있습니다. 면봉, 화장솜도 있고요. 고데기와 드라이기도 각각 2개씩 구비되어있더라고요. 저는 고데기가 있는 줄 모르고 집에서 하나 가져왔지뭐예요. 

가장 안쪽에 있는 화장실 입니다. 화장실도 엄청 깨끗해요. 샴푸, 린스, 바디워시, 폼클렌징, 핸드워시, 치약이 기본적으로 있고요. 화이트, 블랙톤으로 모던한 느낌이에요. 바깥에 있는 카페도 그렇고, 안에 있는 방도 그렇고 모든 공간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예쁩니다. 첫 날은 이렇게 구경을 마치고, 언니를 기다렸다가 함께 컵라면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전 날에 밤에 왔던지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바깥 모습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밖에 나와서 창밖을 봤는데 정말 감탄했어요. 알록달록 동네가 너무 예쁘고 바다와 하늘, 산까지 너무 푸르른겁니다.

연신 와아, 와아! 라며 혼자서 사진을 계속해서 찍었어요. 이곳이라면 또 올 수 있겠다. 이곳이 또 보고 싶다면 또 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창문을 열어놓고 의자에 앉아 한참 밖을 바라봤습니다. 이 그림같은 풍경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한 가지였습니다. '아, 여행오길 정말 잘 했다.' 

어제 밤에는 윗쪽 동네에 있는 곳이라 좀 불편하다 느끼기도 했는데, 이곳 정말 반드시 와야하는 곳이라는 것을 밖에 나와서 산책을 하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언덕쯤이야 뭐,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으로 동해에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는 것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동해하면 바다만 떠올렸었는데, 이제 다른 그림도 하나 더 떠올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