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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노트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제목 뒤에 붙은 '...'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보통 '...' 쓸 때를 생각해보면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때, 여운을 남기는 말을 할 때, 말 끝을 흐릴 때 등이 아닌가. 왜 물음표를 붙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쓰지 않았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p.56

 

소설에는 브람스 공연을 함께 보러가자고 말하는 25살 청년 '시몽'과 그 데이트 신청에 갈지 가지 말지 고민을 하는 39살 '폴'이 등장한다. (여자가 14살 연상이다. 프랑스 작가. 1959년에 발표한 작품.) 폴이 고민을 하는 이유는 그녀는 '로제'라는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폴과 로제는 연인 사이이지만 그 관계에서 폴은 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아니,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가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 문득 그녀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아파트가 무섭고 쓸모없게 여겨졌다. -p.11

 

로제는 늘 폴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구속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다른 여자들과 만남을 갖는다. 매우 이기적인 로제의 모습을 알고 있음에도 폴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외로움의 공간에 갇히게 되는 그런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시몽'이라는 청년의 데이트 신청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시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뭐라고 대답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도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리라. 자신이 그 연주회에 가려는 것인지 아닌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전화를 받은 시몽의 말, 시몽의 목소리에 따라 달라지리라.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고 자신의 그런 망설임을 기분 좋게 음미했다. (중략) 그러는 동안 그녀는 그 연주회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만나러 가는 것은 시몽이 아니라 음악이야. 오늘 오후에 가 봐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면 어쩌면 매주 일요일마다 갈지도 모르지. 그건 혼자 사는 여자에게 좋은 소일거리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p.58

 

그녀는 자신이 만나러 가는 것은 시몽이 아니라 음악이라고 말하며 시몽에게는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브람스 공연을 계기로 끊임없이 폴에게 구애를 하고, 그 사이 로제는 새로운 젊은 여자를 만나며 폴과의 만남에 소홀해짐으로써 폴은 시몽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몽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로제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 14살의 나이차이로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는 그녀의 모습, 자신의 일까지 내팽겨치고 자신의 공간에 들어와 사는 시몽의 모습에 그녀는 시몽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되고,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나면서 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로제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 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해. 좀 늦을 것 같은데....." -p.150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서 여운이 크게 남았다. 처음에는 상처받은 시몽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면서 시몽이 느꼈을 상실감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라는 폴의 말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시몽은 아직 시간과 기회가 많은 젊은 나이인 25살. 마음껏 사랑을 하고 이별할 수 있는 충분한 때. 그녀가 로제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이었다. 자신이 상처받을 것, 외로울 것을 알면서도 로제에게 돌아가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 처음에 언급했던 제목에 '?'가 아닌 '...'를 쓴 이유를 폴과 시몽의 입장에서 두 가지 해석.

1/ 폴의 입장: 자신과 연인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로제, 새로운 청년 시몽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암시.

2/ 시몽의 입장: 폴과의 관계에 진전이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모습을 암시.

그래서 당당한 물음표로 표현할 수 없었던 거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