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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노트

책::: '연애가 끝났다'를 읽고



어떤 책을 빌릴지 생각하지 않고 도서관에 갔다가 빌린 책이다. 몇 권의 책을 고른 뒤, 그 책들의 내용들이 어렵고 무거운 내용들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하나 골라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연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항상 재미있으니까. 연애가 끝났다는데, 어떤 이별이었는지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두 남녀가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로 5년간 함께 걸었던 시간을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돌아서는 이별에서부터 시작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헤어짐의 이유는 남자는 표현이 부족했고 이에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했다는 것. 이로써 서로가 지쳐 끝난 연애였다. 사람은 모두 다 다른데, 이별의 이유는 경우마다 왜 이렇게 다 비슷한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겉으로 봤을 땐 남자가 여자에게 마음이 없는 듯했으나 책의 뒷부분까지 보다 보면 남자가 여자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다른 친구가 증언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은 컸으나 결국은 깨진 관계. 결국은 표현의 문제였던 것일까.

 

남녀가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담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새로운 인물(해영)이 등장한다. 해영은 초반 관계를 형성할 때부터 여자에게 호감이 있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며(담이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그를 가볍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표현한다. 이후에는 조금씩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진중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담이는 전 남자 친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 이별로 인해 받은 상처로 벽돌을 하나씩 쌓아 커다란 벽을 하나 세울 참이었던 여자다. 해영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자신도 마음이 해영으로 옮겨갔지만 절대 자신이 그에게 호감이 있음을 표현하지 않고자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담이가 여러 가지 고민들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들이 디테일하게 쓰여있어 그것들을 읽어내는데 재미가 있었다. 

 

 

영이에게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어떤 의미가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너무 설레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나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되면 어쩌지? 평생 몰라도 되는 나쁜 감정을 알게 되면 어쩌지? 몇 차례 파도에 깎여 나간 삶에 내가 또 다른 파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를 점점 알아갈수록 나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노파심이나 지나친 오지랖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었다. 왜냐면 그가 내게 '연애하자'는 말도 없이 제멋대로 연애를 시작한 건 사랑이 두려워 한없이 가벼워지기를 택했던 그가 처음으로 낸 용기의 표증이었으니까. 이제 그는 내가 파도라면 온몸이 부서져도 기꺼이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진심을 쉽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 고민하고 망설였다. 나를 향한 진심에 진심으로 응답하는 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만약 언젠가 내가 여기서 발을 뗀다면, 내 입 밖으로 영이를 향한 진심이 터져 나온다면 그땐 온전히 그에게 나를 던져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 한 발을 떼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잠가두어야한다. 영이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지 않도록, 커지는 마음의 불씨를 키워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도록 꾹꾹 눌러 담아두어야 한다. -p.155

 


무엇이 이토록 담이가 해영을 밀어내게 했을까. 어떤 이유로 그녀는 자신을 좋아하고 또 자신도 좋아하는 그 남자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판단했을까? 제 아무리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가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되지 통제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인데, 그것을 어떻게 꼭꼭 감추고 눌러 담을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랑을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혹시나 자신이 그 이전에 겪었던 상처를 해영에게 주게 될까 봐 하는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책에서는 솔직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한다.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자신의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 채로 이별을 맞이한 상황, 좋아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뻔한 상황 등.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다 털어놓고 서로 행복한 결말을 얻게 되는 것 까지. 결과적으로 담이의 마음을 해영에게 표현하면서 어렵게 돌아갔던 둘은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혹자는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싫어하면 싫어한다 말하면 되는 거지!"라고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을 해본 또는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결코 담이가 하는 생각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더 복잡하고 더 어려운 생각을 하게 될 테니.